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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과 기호학/ 침입과 항쟁
상징과 기호학/ 침입과 항쟁
변의수(시인,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1. 상징과 역동성
나는 상징을 ‘제3의 논리’라고 한 바 있다. 에코(1932-) 역시 “상징적 활동은 이미 알려진 세계를 <명명>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찾아내도록 하는 것. 상징은 사고의 번역이 아니라 <사고하는 기관organs>” 이라 했다. 에코는 이 말을 『상징적 형식들의 철학』(카시러)에서 보았다고 했다.
카시러(1874-1945)는 “기호란 생각에 대한 단순한 우연적 표피가 아니라 그 생각의 필연적이고 본질적인 기관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진정으로 엄밀하고 정확한 모든 사고는 <상징적 기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기호학>에 의해 지지된다” 고 하였다.
그러나, ‘기표학’으로서, 혹은 ‘상징학’의 종속 학문으로서의 한계…영원한 반쪽, 다시 말해 상징을 증명하는 하나의 징표(token)로서의 운명을 지닌 학문이었음을 예감하지 못한 것 같다.
표상자로서의 시인이나 의미 생성자로서의 비평가는 하나의 세계로서의 자신을 자각해야 한다. 세계에서 피어나는 사과나무가 세계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상징은 스스로 존재하는 세계의 징표이다.
2. 기호학의 침입과 수사학
생물학자가 아닌
칸트(1724-1804)는 놀랍게도『순수이성 비판』에서 “각각의 부분들은 다른 부분들을 만들어내는(그리하여 각각의 부분은 서로가
생태학이나 시스템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부분’은 ‘부분’ 저 너머의 세계로 생성되며 자신을 우주화 해나간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고립된 부분은 생성으로서의 존재 뒤편으로 소멸한다.
세계에 대한 인식으로서의 학문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수학, 물리학의 상호 불소통을 상상할 수 없으며, 철학 · 언어 · 심리 · 생물 · 생명 · 인지학이 별개의 영역으로 고립된 그런 끔찍한 상황을 생각할 수 없다. 시와 언어 · 기호 · 철학은 오늘날엔 전체적 상황으로 조직되고 있다.
우리는 그간 기호학이 기생적 학문이라는 폄하를 받을 정도로까지 제반여타 학문에 침착하여 생명을 키움을 목격한다. 뿐 아니라, 기호학은 마치 외계의 생명처럼 자신의 숙주에게 놀라운 힘을 불어넣어 주기까지 한다.
라캉(1901-1981)의 무의식의 고정점(point de capiton)을 공박한 데리다(1930-)의 수사학은 노련한 기호학의 방식이었다. 그는 철학자라기보다 실험적 기호학자로 보는 게 옳을지 모르겠다. 데리다는 소쉬르의 무한 미분적 차이의 기호론과 퍼스의 진행 개념의 역동적 기호학을 연합했다.
오늘날 제반 학 · 예의 장은 상호텍스트적으로 열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학의 진정한 주체성은 제국적 학문들의 정체성을 정확히 투시하고 제어함으로써 지켜질 수 있다.
기호학이 문학의 ‘상징’ 세계를 분석해 들어올 때 과연 그들의 경계역은 어디서 이뤄질까. 기호학의 조작적 해체와 분석 · 조립은 그 주도권을 손쉽게 넘겨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에코의 발언이다.
3. 상징의 해부와 디나미스
수사학은 비유법의 상징을 협의의 상징으로, 직유, 은유, 환유 등을 광의의 상징으로 규정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수사학은 기호 · 언어 · 신화 · 심리 · 철학 등 여타 분야의 이론과 호환된다.
상
여
상징소의 해부학적 나열은 인간소 화학 분자식의 배열 따위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그 유기적 조직화는 놀랍게도 살아 움직여 초월적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래서 상징은 디나미스로서의 자동사인 것이다.
상징은 우리의 혼을 움직인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존재에 관한 참된 통찰에 이르게 한다. 나무를 바라볼 때 나는 곧 나무가 아닌가? 나무를 생각하는 나는 푸른빛으로 물들어 있지 않은가, 녹색으로 빛나고 있지 않는가, -「꿈」부분
왜, 나는 이곳에 있으면서 저곳에 있는 걸까. 왜, 나는 혼자이면서 모두와는 떨어져 있는 걸까. 나는 걷고 있지만 나무는 저곳에 서 있다. 어디에 그토록 틈새가 있어 우리는 가벼운 톱질에도 쉽게 갈라지고 마는 것일까! 이것은 내가 세계를 사랑하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같은 거리에서 같은 생각에 골몰하기로 한 것이다.
나무를 바라볼 때, 나는 나무가 아닌가, 왜, 나는 이곳에 있으면서 저곳에 있는 걸까.
왜, 우리는 하나이면서 서로는 나뉘어져 있는 걸까? -「상징과 기호학/ 침입과 항쟁」부분
[출처] 상징과 기호학/침입과 항쟁- 변의수(시인,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