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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문인회 신인 수상식 축사

Author
mimi
Date
2014-12-10 19:55
Views
7126


            

                   워싱턴문인회 신인 수상식 축사 (12-7-14)

 

                                  - 강창욱/ 정신과 전문의, 작가-

 

 

         쓰는 ,  시인, 작가를 생각 가지 생각이 저에게 옵니다. 하나는 기독교 성경 신약성경의 요한복음 일장일절 구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개셨으니 말씀은 하나님이 시니라... (In the beginning was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Word was God.). 지금이 재림절 이라 성탄을 기쁨으로 기다리는 명절입니다. 우리는 성탄이 예수님의 탄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또한 말씀이 육신이 되신 날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 까요. 불교에서는 삼신(법신, 보신, 화신) 법신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삼신이란 부처님을 여러 각도에서 보아 형용한 것입니다. 법신이라는 진리의 본체라고 합니다. 법이란 우주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기독교에서 말씀 Logos 같은 의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말씀은 예수그리스도로 화신(Incarnate)했고 불교에서 진리의 화상이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요컨대는 기독교의 진리와 불교의 진리가 이 세상, 사바에 있는 불쌍한 인간에게 전해져야하는데 그 것을 영원히 전하는 방법은 인간으로 화신 한 예수그리스도와 석가모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대 그것이 전해진 방도가 문학 즉 글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영원한 베스트셀러는 성경이 아닙니까. 반양심경, 금강경, 묘법 화엄경(법화경)등 불경은 시집 같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쓰시는 분, 즉 문예 창작가는 우주의 혼과 인간의 혼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분들이라고 봅니다. 왜 제가 아름답다는 형용사를 더 했을까하고 과장한다고 보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플라톤 이후 서양 철학가 치고 진리에 미(아름다움 즉 Esthetics)로 표현 하고 미를 진리의 극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철학가이며 시인인 프릿쯔 쉴러는 “선은 아름답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또 제가 글 쓰는 교본 몇을 읽어보았습니다. 모두 한결같이 진실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어느 새 저는 글을 쓰는 것이 진실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실은 우주의 혼이다 하는 연결을 보았습니다. 춘원 이광수의 딸이 아버지에게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너 마음속에 있는 것을 솔직하게 쓰면 된다고 한 말씀이 기억납니다. 그래서 저는 문예창작하시는 분들을 우주의 진실 즉 우주의 혼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전도사로 봅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이 ‘말씀 하시기를..’ 하고서는 예언을 시로 표현 했습니다.

 

         계관시인(Poet Laureate) 한나라 특히 왕국에서 왕이나 지도자가 시인의 예능에서 지혜를 빌리고 행사를 축하하는 목적으로 백성을 다스리는데 도움을 얻고자 14세기경부터 서양의 왕국에서 선정하는 풍습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월계관이라는 것은 고대 그리스에서 뛰어난 시인에게 주어지는 영예의 상징이었습니다. 시인을 가장 종경 했다는 말입니다. 요즘은 마라톤 우승자에게도 월계관을 씌워주고, 나폴레옹도 쓰고 싶어 했고 로마의 황제들도 월계관을 쓰기시작 했습니다. 이것으로 쓰는 이들 특히 시인의 역사적 위치를 짐작하실 있을 것입니다.

 

        저는 정신과의학을 전공했습니다. 정서를 표현하는 길이 무척 어려운 것임을 아쉽게 여겨왔습니다. 예를 들자면 간단한 표현으로 ‘우울하다’는 말은 정신과 심리학에서 가장 흔한 말입니다만 그러나 이처럼 이해하기 힘든 표현이 없습니다. 하는 일이 잘되지 않아 잠시 우울하다고 하는 뜻에서 부터 죽고 싶도록 심한 우울증까지의 표현은 가지 ‘우울하다’ 하는 말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대신 ‘참기 힘들고 외로워’ ‘앞이 캄캄하고 먹구름만 있어’ 하면 우리 모두가 비교적 쉽게 동감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환자의 괴로움을 들을 때마나 환자와 내가 두보와 이백 같은 시인으로서 대화를 했으면 서로 무슨 말인지 금방 고통을 이해할 있지 않을 하는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알기로는 시는 가슴에서 울어나는 것을 표현하며 대부분의 정신 질환은 가슴의 아픔 고통스러운 정서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슬프고 무서울 때에도 시인은 것을 마음속에 있는 정서대로 표현을 하면서 아름답게 합니다. 언어 속에 언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미국의 인기 있은 미국 사람들이 욕쟁이 시인라고 하는 샌드버거도 그의 시를 끝까지 읽으면 어느새 그가 마디 탁한 말이 아름다운 정서로 변태하는 것을 있습니다. 대부분의 대영제국의 시인들은 자가네 들이 정신적 고통을 안고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시들을 줄줄이 엮어 내지 않았습니까. 문예작가는 표현을 역량이 많지만 보통 우리가 얼마나 우리의 심정을 표현 하지 못하고 사는지 모릅니다. 참으로 같으면서 말로 하지 못하고 잡힐듯하면서 잡히지 않은 영마루의 구름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문예창작 하시는 분들을 부러워하고 존경 왔습니다.

 


        

        오늘 수상 하셔서 영예에 오른 분들은 문학을 지망하는 분들에게 격려가 것입니다. 앞에 말씀 드린 데로 저는 쓰시는 분은 우주의 진리와 아름다움을 전하는 전도사로 본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더욱 우리들에게 좋은 글을 보내시고 우리들의 마음속을 밝혀주시며 또한 혼탁한 속세의 먼지 속에서 잠시나마 나와서 있는 정서의 쉼터를 만들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또한 우중충한 세상에 빛이 되어 주시기를 빌며 축사의 말씀을 가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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