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글

언론보도 코너

문인회 언론보도

나누고 싶은 글

문학 뉴스

고미숙, '호모 코뮤니타스'

Author
mimi
Date
2013-09-04 07:53
Views
9679

고미숙, ‘호모 코뮤니타스’ 돈의 달인이 되는 법

돈은 얼마나 많아야 할까?

우리는 도대체 돈이 얼마나 많아야 쪼들리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수백억, 수천억쯤 벌게 되면 나는 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출처: gettyimages>

돈에 쪼들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 ‘88만원 세대’들에게 정규직은 ‘로망’이다. 안정된 수입을 안기는 까닭이다. 하지만 정규직이 되면 돈 고민에서 해방될까? 그렇지 않다. 수입이 늘수록 지출도 커지는 법, 학자금 대출, 주택 마련 자금, 각종 경조사비 등등, 돈 들어 갈 곳은 늘어만 갈 테다.

승진하고 더 많은 수입을 올리면 어떨까? 그래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벌이가 많아지면 품위유지(?)에도 적잖이 돈을 써야 하는 탓이다. 남들이 골프를 치면 나도 쳐야 할 듯싶고, 차도 배기량 큰 것으로 몰아야 할 것 같다. 안 그러면 나만 뒤떨어지는 듯해서다. 날로 높아지는 소비 수준, 부자들도 늘 돈이 부족할 수밖에 없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돈이 얼마나 많아야 쪼들리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수백억, 수천억쯤 벌게 되면 나는 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엄청나게 많은 돈은 재앙일 뿐

이런 물음에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고개를 흔든다. 떼돈을 번다고 상태가 나아지지는 않는다. 엄청나게 많은 돈은 되레 재앙이 될 뿐이다. 고미숙은 [열하일기]에 나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옛날에 도적 세 명이 함께 남의 무덤 하나를 파서 금을 도적질하고는 자축도 할 겸 술을 한 잔 마시기로 했다네. 그 중 한 명이 선뜻 일어나 술을 사러 가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지. “하늘이 시키는 좋은 기회로구나. 금을 셋이 나누는 것보다는 내가 독차지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그러고는 술에 독약을 타 가지고 돌아왔어. 그런데 오자마자 남아 있던 도적 둘이 갑자기 일어나서 그를 때려 죽여 버렸지. 그런 다음 둘은 술과 음식을 배불리 먹고, 금을 반분했는데 얼마 못 가 함께 무덤 곁에서 죽고 말았지. 그 후 그 금은 길옆에서 굴러다니다가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걸 얻는 자는 하늘에 감사드리면서도 이 금이 무덤 속에서 파내어 졌고, 독약을 먹은 자들의 유물이며, 또 앞사람 뒷사람을 거쳐 몇 천 몇 백 명을 독살했는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거야.- 고미숙 지음,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북드라망, 2013, 209쪽.

벼락부자들의 최후가 어떤지를 살펴보라. 헛헛한 마음은 낭비를 부르고, 삶은 고독 속에서 무너진다. <출처: gettyimages>

돈에는 숱한 인연(因緣)이 묻어 있다. 돈이 꼬이는 곳에는 불안과 다툼도 몰려들기 마련이다. 돈 때문에 엉망이 된 친구, 가족 사이가 하나 둘이겠는가. 돈은 끊임없이 갈등과 분란을 낳는다. 로또 맞아서 부자되는 사람 없다. 벼락부자들의 최후가 어떤지를 살펴보라. 헛헛한 마음은 낭비를 부르고, 삶은 고독 속에서 무너진다. 부유함이 곧 행복은 아니라는 점을 쉽게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돈에 아득바득한다. 돈이 많으면 행복해질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고미숙은 말한다. “재산이 많은 것과 풍요롭게 사는 것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미 돈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하게 된 세상에 살고 있다.

중산층에게 버거운, ‘중산층’의 삶

우리는 ‘소득 수준이 어느 정도면 어느 수준의 소비를 한다’는 잣대에 따르는 삶을 산다. <출처: gettyimages>

사람들은 이제 대부분 병원에서 태어나서 병원에서 죽는다. 태어나고 죽는데도 돈이 드는 셈이다. 삶은 말할 나위도 없다. 친구를 사귀는 데도, 무엇을 배우는 데도, 끊임없이 돈이 필요하다. “이 시대에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소비하는 수밖에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돈이 있어야 되는 구조다. 그러니 사람들이 돈에 매달릴 수밖에 없겠다.

우리가 돈에 허덕이는 이유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소비패턴은 ‘서울 중산층의 삶’이라는 기준이 지배하고 있다. 아파트에 자가용, 인테리어에서 쇼핑 코스까지, 우리는 ‘소득 수준이 어느 정도면 어느 수준의 소비를 한다’는 잣대에 따르는 삶을 산다. 그럴수록 우리의 주머니는 쪼들리기만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중산층의 삶이 실제 ‘중산층’에게 얼마나 버거운지 떠올려보라. ‘평균적인 삶’은 우리에게 늘 무리한 소비를 요구한다.

공동체가 답이다

하지만 우리가 꼭 이렇게 살아야 할까? 고미숙에 따르면 우리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그녀는 ‘돈을 제대로 쓰는 법’을 익히면 돈에 휘둘리지 않고도 살 수 있다고 잘라 말한다. 모든 것이 돈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 관계를 가꾸라는 뜻이다.

사실, 옛날 사람들에게는 지금처럼 돈이 절실하지 않았다. 생활이 마을과 가족 단위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일손이 필요할 때는 일품을 서로 주고받았다, 쌀이 떨어지거나 물품이 부족할 때는 서로 빌려주고 되갚기를 거듭했다. 이러는 가운데 사람 사이의 정(情)도 두터이 쌓여갔다.

훌륭한 상인은 눈앞에 이익보다 손님과 좋은 관계를 맺는 데 더 신경을 쓴다. <출처: gettyimages>

줄 수 있을 때 주고 필요할 때 도움을 받는 ‘증여’의 삶은 돈에 대한 집착을 줄여놓는다. 이는 ‘상식’과도 통한다. 예를 들어보자. 훌륭한 상인은 눈앞에 이익보다 손님과 좋은 관계를 맺는 데 더 신경을 쓴다. 거래가 이번 한번으로 끝나지 않으리라 믿는 까닭이다. 설사 손해를 봤다 해도, 상인에게서 좋은 인상을 받은 손님은 다시 찾아오게 되어 있다. 세월이 갈수록 서로에 대한 신뢰는 점점 두터워 진다. 그 가운데 이익은 절로 쌓여간다. 좋은 상인은 이익보다 정직과 신뢰에 방점을 둔다. 돈에만 매달릴 때는 정직도 신뢰도, 사람도 달아난다. 반면, 정직과 신뢰와 우정을 가꾸면 돈은 절로 따라붙는다. 이게 돈을 돌게 하는 세상의 이치다. 상인과 손님이 단골 관계로 촘촘하게 얽힌 전통시장은 ‘공동체’에 가까웠다. 누구도 ‘돈, 돈’하며 애달아 하지 않았음에도, 살가운 인간관계 속에서 돈도, 생활도 굴러갔다.

따뜻한 관계는 필요 없는 소비도 줄인다. 친밀한 사이에서는 ‘과시를 위한 소비’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같이 사는 친구나 가족들 앞에서 나 홀로 비싼 옷 입고 거들먹거리기란 쉽지 않다. 상대방에게 위화감과 좌절을 안길까 저어 되어서다. 오래된 연인 사이도 다르지 않다. 처음 만났을 때는 비싼 곳에서 돈을 들여 데이트를 하지만, 관계가 무르익을수록 실속 있는 장소를 찾는다. 서로 허세를 부릴 까닭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렇듯 가까운 관계, 살가운 사이는 돈에 대한 집착과 소비로 과시하고픈 욕망을 줄인다. 그렇다면 ‘공동체(community)’야말로 돈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게 하는 치료제가 아닐까?

돈보다 관계가 먼저다.

정겨운 친구와 이웃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은 돈에 덜 매달린다. 내가 어려울 때 나를 도와줄 사람들이 주변에 널려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출처: gettyimages>

돈에 집착하는 부자는 외롭다. 반대로, 외로운 부자는 돈에 매달린다. 온기 없는 황량한 세상, 믿을 것은 돈밖에 없는 탓이다. 정겨운 친구와 이웃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은 돈에 덜 매달린다. 내가 어려울 때 나를 도와줄 사람들이 주변에 널려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돈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정을 나누며 온기 넘치는 관계를 가꿀 수 있어야 한다. 관계가 넓고 따뜻한 사람 주변에는 돈이 늘 흘러 다닌다. 함께 하는 일이 많을뿐더러, 그와 일을 같이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은 덕분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연스레 ‘돈의 달인’이 된다. 도움을 주고받을수록 관계는 두터워지며, 돈도 자연스레 흐름을 탄다.

돈은 돌고 돌아야 한다. 관계가 끊긴 돈은 불행을 부른다. 개인주의가 판치는 부자 나라에 우울증 환자가 많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돈에 치이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면, 돈보다 사람 사이에 더 마음을 기울일 일이다. 돈보다 관계가 먼저여야 한다.

안광복
소크라테스처럼 일상에서 철학하기를 실천하고자 하는 철학 교사.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서강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와 강연을 통해 철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저서로는 ‘철학 역사를 만나다’ ‘열일곱 살의 인생론’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등이 있으며 지금은 서울 중동고에서 철학교사로 일하고 있다.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