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가 소개하고 있는 중국의 한 백과사전에서 동물들은 이렇게 분류된다. 황제에 속하는 동물, 향료로 처리하여 방부 보존된 동물, 사육동물, 젖을 먹는 돼지, 인어, 전설상의 동물, 주인 없는 개 등등. 미셸 푸코(M. Foucault, 1926-1984)는 그의 저서 [말과 사물](1966)에서 이 분류법을 보면서 웃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서구인들의 사고방식 전체를 산산 조각 내 버리려는 웃음이다. 저 분류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유종이나 린네의 분류법 같은 서구인들의 주류적 사고방식 안에선 불가능한 것, 서구적 사유의 한계 너머에서 출몰하는 다른 사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지식 또한 영구 불변하는 진리 같은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 너머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푸코는 철학, 의학, 범죄학, 성적(性的) 영역 등에서 오가는 이야기들(담론, discourse)이 불변하는 ‘진리’를 담은 명제(proposition)로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학문 외부의 우연한 조건들 때문에 일정한 시대에 진리로 통용된다는 것을 보이고자 했다. 그것은 마치 지하에 묻힌 그리스의 옛 신전에 참된 신성(神聖)이 깃들고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그 신전이 어떻게 건축되었는지 지층을 탐구하는 ‘고고학자’의 작업과 유사하다. 고고학자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모든 종교의 신전들을 파헤치며 어떻게 당시의 사람들이 신에 대해 생각했고 교리상의 진리를 믿었는지 밝혀줄 수 있다. 푸코는 철학과 의학을 비롯한 학문의 수많은 신전들을 이런 고고학의 대상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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