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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며

Author
이 은 애
Date
2009-11-12 12:44
Views
5750

늙은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며

 

                                                  정호승


늙은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며 비가 온다

어머니의 늙은 젖꼭지를 만지며 바람이 분다

비는 하루 종일 그쳤다가 절벽 위에 희디흰 뿌리를 내리고

바람은 평생동안 불다가 드디어 풀잎 위에 고요히 절벽을 올려놓는다

나는 배고픈 달팽이처럼 느리게 어머니 젖가슴 위로 기어올라가 운다

사랑은 언제나 어머니를 천만번 죽이는 것과 같이 고통스러웠으나

때로는 실패한 사랑도 아름다움을 남긴다

사랑에 실패한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늙은 젖가슴

장마비 떠내려간 무덤 같은 젖꽃판에 얼굴을 묻고

나는 오늘 단 하루만이라도 포기하고 싶다

뿌리에 흐르는 빗소리가 되어

절벽 위에 부는 바람이 되어

나 자신의 적인 나 자신을

나 자신의 증오인 나 자신을

용서하고 싶다



▷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창작과비평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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