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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리고 삶 / 박평일

Author
mimi
Date
2010-03-10 09:05
Views
5691







 


죽음은 과일 속에 들어있는 씨앗처럼

삶과 함께 살아간다. -법정-

 

삼월 첫주는 죽음 소식으로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무소유의 , 법정스님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인터넷으로 접하고

며칠 동안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법정은 평생을 가슴 속에 금강경을 품고 살았고,

나는 평생을 가슴 속에 성경을 품고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빔 속에서 빚어 내었던 무소유의 소리는

나의 영혼 속에 그리움과 울림으로 십 년을 메아리쳐 왔습니다.

산사 처마끝을 적시는 풍경소리로...

  

그가  마틴 부버의 " 너는 세상 어디에 있느냐 "  질문에 풍성함으로 존재하고 었을 때,

나는 실존의 고독감으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큰 버림을 실천하며 무소유의 삶을 살고 있을 때,

나는 불필요한 것들을 쌓는 탐욕으로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 무엇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한 편으로 소유를 당하는 것이며,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하는

그의 말처럼, 나는  무소유 삶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만의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에크하르트 처럼 "하나님과 사이에 하나님도 없는 자유인의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이제, 무소유의 법정도, 소유에 얽매여 살아가는 나도

죽음이라는 병을 앓다가
땅에서
사라져 것입니다.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 ,

공자는 제자 계로에게 했던 죽음에 대한 고백이 생각납니다.

삶을 채움으로 살아가는 나같은 범인들에게는 죽음이니 삶이니 하는

질문들은 사치스러운 단어들인지 모릅니다. 빵이 하늘일지도 모릅니다.

 

선가에서는 삶이 무엇인가를 알려면, 먼저 죽음이 무엇인 지를 알아야 합니다.

꽃이 피는 이유를 깨달으려면, 먼저 꽃이 지는 이유를 깨달아야 합니다.

참빛은 칠흑같은 어둠을 경험한 사람들만이 알아 수가 있습니다.

 

어제는 아들 친구 어버지 고별예배에 참석했습니다.  10년 동안 골수암을 앓다가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이 세상에 남겨두고 떠나는 한 아버지의 슬픈 죽음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새로운 시작입니다." 하는 집례목사의 설교를 으면서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

그러나 죽음과 에는 시작도 끝도 따로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재 속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 죽음이고 삶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인이 남기고 간 사랑하는 아내,  자녀들 그리고 친지들이 그가

54년 동안 살아온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고인의 차남과 미망인의 친구분이 고인에게

흐느낌으로 읽었던 고별사가 그의 죽음이었습니다.

두 아들을 양육하면서 남편 병수발 10여 년,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가난과 아픔, 절망,

실로 인고의 세월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 얼굴에는 따뜻한 사랑의 미소가 남아 있엇습니다.

친구분은 그녀의 헌신적 사랑을 생각하며 울면서 조사를 읽었습니다.

" 아버지 걱정말고 떠나싶시요. 한 때는 아버지에게 실망도 하고 미워도 했지만

진심으로 존경했습니다. 남은 우리들이 어머님을 아버지보다 더 사랑하고 보살펴 드리겠습니다."

아들도 울고 있었습니다.

인간들의 앞모습은 허상이, 뒷모습 상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

 

 

"신은 인간들을 이 땅에서 이룬 업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얼마나 많은 사랑을 나누었느냐로 평가한다." 라는

실존주의 철학자 꺄뮤의 말은 완전해 보이지 않습니다.

신은 "사랑을 꽃 피울 씨앗들을 이 땅에 얼마나 많이 뿌리고  갔느냐 " 로 평가 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남기고 뒷모습 , 그의 삶이고, 죽음이며 사랑의 씨앗들이었습니다.

 

  

포도주 흘러 넘치는 잔처럼

당신으로 가득 채워진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내 눈으로 당신이 보고

귀로 당신이 듣고

머리로 당신이 말을 만들어

당신 기쁨으로 그것들을 노래에 싣습니다.

 

, 사랑으로 당신 자신을

내게 주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당신께로

되돌아 흐르는 것을 느끼십시오!

 

주여, 당신은 나의 詩人이요

나는 당신의 노래 입니다.

 

-타골의 또는 죽음 안에서-

 

버지나아 숲속에서

 

海岩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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