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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

Author
시문학회
Date
2022-03-27 23:07
Views
297

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김경주

어쩌면 벽에 박혀 있는 저 못은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깊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쪽에서 보면 못은

그냥 벽에 박혀 있는 것이지만

벽 뒤 어둠의 한가운데서 보면

내가 몇 세기가 지나도

만질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못은

허공에 조용히 떠 있는 것이리라

바람이 벽에 스미면 못도 나무의 내연(內緣)을 간직한

빈 가지처럼 허공의 희미함을 흔들고 있는 것인가

내가 그것을 알아본 건

주머니 가득한 못을 내려놓고 간

어느 낡은 여관의 일이다

그리고 그 높은 여관방에서 나는 젖은 몸을 벗어두고

빨간 거미 한 마리가

입 밖으로 스르르 기어나올 때까지

몸이 휘었다

못은 밤에 몰래 흰다는 것을 안다

사람은 울면서 비로소

자기가 기르는 짐승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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