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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을 보내면서

Author
mimi
Date
2013-12-13 21:05
Views
4545
 
수필가님들께

눈보다 겨울비가 낫다고 하면서 나이탓으로 돌렸던 적이 있지만
출퇴근 걱정이 없는 지난 일요일에 내린 푸짐한 첫눈은 우리 모두의
가슴을 설레게 했으리라 믿습니다. 첫눈 소식을 핑계삼아 오래 된
친구들과 전화 통화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12월의 중순인 지금쯤은  사나운 겨울 바람에도 익숙해져야겠지요?
 
워싱턴 문학 출판기념회, 총회 등 이어진 문인회 행사로 인하여
 '글 사랑방 모임'을 가진 지가 서너달이 지났네요. 수필가님들과
머리 맞대고 그동안에 쓰신 좋은 글들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많이
기다려지는군요.
 
연말을 맞아 행사 모임에 참석하시랴, 샤핑하시랴 몸과 마음이
부산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런 분주함 속에서라도 정신적인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필요하실 것 같아 '윤오영' 수필가님의 수필을
몇 편 첨부 파일로 보내드립니다. 긴 겨울 밤에 읽는 좋은 수필이야말로
우리 정서의 기름진 거름이라 여깁니다.
 
오는 28일 박현숙 부회장님 댁에서 행해지는 연말파티에서 뵙게
되길 바라며 성탄을 맞이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새해에는 수필가 여러분의 왕성한 작품활동과 저희 수필문학회의
보람찬 한해가 되길 빕니다.
 
 
수필문학회 위원장 김레지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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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마음/윤오영



    나는 누구에게 읽히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글은 소용없는 글인 것을 안다.
어느 소설가나 문필가가 소용없는 글을 쓰려 것인가.
그러나 나는 문학가가 아닌 것을 스스로 안다. 그런 까닭에 애당초에 그런 야망은 버린지 오래다.

 고요한 밤에 좋은 친구가 있어 창문을 두드린다면 얼마나 반가우랴. 그와 차를 마시며 도란도란 마음속의 심회를 있다면,
무엇 하러 원고지 위에 붓을 달리랴. 벗이 없는 까닭에 종이 위에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글을 써서 세상에 전하려 하지 않는다. 글이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후세에 칭찬을 받는다 하자.
그러나 그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며, 사람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으랴. 이미 글은 내가 아니다.

 나는 사람의 글을 읽고 그의 이름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필명이요, 그의 원명이 아닌 것을 발견한다. 필명과 원명 어느 것이 진짜 사람이냐. 그러고 보면 작품을 읽고 굳이 작자를 기억할 필요도 없다. 글을 나의 글이라 해도 도용될 것이 없고,
글을 연암의 글이라 해도 허위될 것이 없다.


  사람의 글을 읽으면 속에 있는 글이요,
친구의 글이다. 그것은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발견이냐.
그의 얼굴을 있고,
그와 담소를 나눌 있다면 외에 무엇을 구하랴. 그러나 그는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움.
말을 들려줄 없는 안타까움.
이런 때면,
나는 원고지 위에 붓을 달린다.

 나는 결코 진실한 사람이 된다. 매일매일 허위와,
아닌 자세와, 비루한 타협과 같이 살아가야 하는 저속한 인간임을 스스로 안다. 나는 의리와 용기를 잃은 비겁한 존재임을 스스로 안다.
그러나 어찌하랴,
여기서 벗어날 줄을 모르는 비참한 존재다. 글은 나에게 허위를 요구하지 않는다.
진실이 그리울 때면, 나는 원고지 위에 붓을 달린다.(……)



<감상>


오영(1907~1976), 피천득 선생의 양정고보
3 선배로 보성고등학교 국어교사를 역임하였다.
<방망이 깎던 노인> 간결하면서도 단아한 문체로 글을 썼다. 연암 박지원 우리 고유 문장에 기반을 수필문장을 써왔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1) 쓰는 동기:
나는 누구에게 읽히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벗이 없기에 종이 위에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남의 글을 읽을 때도 작품이 중요한 것이지 저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옛글을 읽은 저자와 만날 없으니 대화를 나누기 위해 글을 쓴다.

2)글의 주제: 글은 후세에 전하려 쓰는 글이 아니다.
후세의 칭찬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3)글의 지향점: 나는 진실한 사람이 못된다. 진실이 그리울 때면 글을 쓴다.

즉, 그는 수필을 친화성, 감동성, 진실성, 외로움의 해결책으로 쓴다. 객관성보다는 쓰지 않고는 배길 주관성으로 쓰고, 감동이 없는 문장을 나열할 필요는 없으며,
글의 내용은 진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부끄러움



고개 마루턱에 방석 소나무가 하나 있었다. 예까지 오면 거진 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마루턱에서 보면 야트막한 밑에 올망졸망 초가집들이 들어선 마을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넓은 마당 집이 진외가로 아저씨뻘 되는 분의 집이다.

나는 여름 방학이 되어 집에 내려오면 번씩은 집을 찾는다. 집에는 나보다 아래인,
열세 되는 누이뻘 되는 소녀가 있었다. 실상 촌수를 따져 가며 통내외까지 절척(切戚) 아니지만,
서로 가깝게 지내는 터수라, 내가 가면 여간 반가워하지 아니했고, 으레 소녀를 오빠가 왔다고 불러내어 인사를 시키곤 했다.
소녀의 몸매며 옷매무새는 제법 색시꼴이 박히어 가기 시작했다.
때만 해도 시골서 범절 있다는 가정에서는 살만 되면 벌써 처녀로서의 예모를 갖추었고 침선이나 음식 솜씨도 나타내기 시작했다.
나는 사랑에 들어가 어른들을 뵙고 수인사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얼마 지체한 뒤에,
건넌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점심 대접을 하려는 것이다. 사랑방은 머슴이며 일꾼들이 드나들고 어수선했으나,
건넌방은 조용하고 깨끗하다. 방도 말짱히 치워져 있고, 자리도 깔려 있었다.
아주머니는 오빠에게 나와 인사하라고 소녀를 불러냈다.

 


소녀는 미리 준비를 차리고 있었던 모양으로 옷도 갈아입고 머리도 곱게 매만져 있었다.
나도 옷고름을 매만지며 대청으로 마주 나와 인사를 했다.
작년보다는 훨씬 성숙해 보였다. 지금 건넌방에서 옮겨 것이 틀림없었다. 아주머니는 일꾼들을 보살피러 나가면서 오빠 점심 대접하라고 딸에게 일렀다. 조금 있다가 딸은 노파에게 상을 들려 가지고 왔다.
닭국에 말은 밀국수다. 오이소박이와 호박눈썹나물이 놓여 있었다. 상차림은 간소하나 정결하고 깔밋했다. 소녀는 촌이라 변변치 못하지만 많이 들어 달라고 친숙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짤막한 인사를 남기고 곱게 문을 닫고 나갔다.


 


남창으로 등을 두고 앉았던 나는 상을 받느라고 돗자리 길이대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맞은편 벽모서리에 걸린 분홍 적삼이 비로소 눈에 띄었다.
곤때가 약간 묻은 소녀의 분홍 적삼이.

 


나는 야릇한 호기심으로 자꾸 쳐다보지 아니할 없었다. 밖에서 무엇인가 수런수런하는 기색이 들렸다. 노파의 은근한 웃음 섞인 소리도 들렸다.
괜찮다고 염려 말라는 같기도 했다. 그러더니 노파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밀국수도 촌에서는 별식이니 맛없어도 많이 먹으라느니 너스레를 놓더니,
슬쩍 적삼을 떼어 가지고 나가는 것이었다.

 


상을 내어갈 때는 노파 혼자 들어오고,
으레 따라올 소녀는 나타나지 아니했다.
적삼 들킨 것이 무안하고 부끄러웠던 것이다. 내가 아주머니는 오빠가 떠난다고 소녀를 불렀다.
그러나 소녀는 안방에 숨어서 나타나지 아니했다. 아주머니는 "갑자기 수줍어졌니, 애도 새롭기는."하며 미안한 머뭇머뭇 기다렸으나 이내 소녀는 나오지 아니했다.
나올 뒤를 흘낏 훔쳐본 나는 숨어서 반쯤 내다보는 소녀의 뺨이 확실히 붉어 있음을 알았다. 그는 부끄러웠던 것이다.

 




 


곶감과 수필



소설을 밤(栗)에, 시를 복숭아에 비유한다면 수필은 곶감(乾枾) 비유될 것이다. 밤나무에는 먹는 쭉정이가 열리는 수가 있다. 그러나 밤나무라 하지,
쭉정나무라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보면 쭉정이도 밤이다. 복숭아에는 먹는 뙈기 복숭아가 열리는 수가 있다. 그러나 역시 복숭아나무라 하고 뙈기나무라고는 하지 않는다.
뙈기 복숭아도 또한 복숭아다.
그러나 감나무와 고욤나무는 똑같아 보이지만 감나무에는 감이 열리고 고욤나무에는 고욤이 열린다.
고욤과 감은 별개다. 소설이나 시는 되어도 형태로 보아 소설이요 시지 다른 문학의 형태일 수는 없다. 그러나 문학 수필과 잡문은 근본적으로 같지 않다. 수필이 되면 문학이요, 못되면 잡문이란 말은 성격을 구별 데서 말이다. 아무리 글이 유창하고 재미있고 미려해도 문학적 정서에서 출발하지 아니한 것은 잡문이다.
말이 거슬리게 들린다면 문장 혹은 일반수필이라고 해도 좋다.
어떻든 문학 작품은 아니다.

밤은 복잡한 가시로 송이를 이루고 있다.
속에 껍질이 있고, 보늬가 있고 나서 알맹이가 있다.
소설은 복잡한 이야기와 다양한 변화 속에 주제가 들어 있다. 복숭아는 살이다.
자체가 쳔년반도千年蟠桃 신화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형태를 이루고 있다. 시는 시어 자체가 하나의 이미지로 조성되어 있다. 그러면 곶감은 어떠한가. 감나무에는 아름다운 열매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푸른 열매가. 그러나 푸른 열매는 풋감이 아니다. 늦은 가을 풍상을 겪어 모든 나무에 낙엽이 때, 푸른 하늘 서리 바람에 비로소 붉게 익은 감을 본다. 감은 아름답다. 이것이 문장이다. 문장은 원래 문채文采 뜻이니 청적색靑赤色 이요 적백색赤白色 이다. 글의 찬란하고 화려함을 말함이다.

 


그러나 감이 곶감은 아니다. 고운 껍질을 벗겨야 한다. 문장기文章氣 벗겨야 글이 된다는 원중랑袁中郞 말이 옳다. 껍질을 벗겨서 시득시득하게 말려야 한다. 여러 손질을 해야 한다.
그러면 속에 있던 당분이 겉으로 나타나 하얀 시설枾雪 앉는다.
만일 익었거나 상했으면 시설은 앉지 않는다. 시설이 앉은 다음에 혹은 납작하게 혹은 네모지게 혹은 타원형으로 매만져 놓는다.
이것을 곶감을 접는다고 한다. 감은 오래 가지 못한다. 곶감이라야 오래 간다.

수필은 이렇게 해서 만든 곶감이다. 곶감의 시설은 수필의 생명과도 같은 수필 특유의 것이다. 곶감을 접는다는 것은 수필에 있어서 스타일이 것이다. 수필,
수필 마다의 형태가 것이다. 그러면 곶감의 시설은 무엇인가. 이른바 정서적 ` 신비적 이미지가 아닐까.
이미지를 나타내는 신비가 수필을 둘러싸고 있는 졸과 같은 무드다. 수필의 묘는 문제를 제기하되 소설적 테마가 아니요, 감정을 나타내되 시적 이미지가 아니요,
놀과도 같이 아련한 무드에 쌓인 신비로운 정서에 있는 것이다.

 


 


방망이 깎던 노인



벌써 40 전이다. 내가 세간난 얼마 돼서 의정부에 내려가 때다.
서울 왔다 가는 길에, 청량리 역으로 가기 위해 동대문에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방망이를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방망이를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같았다.


" 싸게 없습니까?"
했더니,

"방망이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됐는데, 자꾸만 깎고 있었다. 인제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들은 대꾸가 없다. 타야 차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가서 사우.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수도 없고, 차시간은 어차피 틀린 같고 해서,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방망이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됐다고 준다. 사실 되기는 아까부터 있던 방망이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 따위로 장사를 가지고 장사가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商道德)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동대문 지붕 추녀를 바라보고 섰다. 때,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수염에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 셈이다.

 


집에 와서 방망이를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배가 너무 부르면 옷감을 다듬다가 치기를 하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배가 너무 부르면 다듬잇살이 펴지지 않고 손에 해먹기 쉽단다. 요렇게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풀렸다. 그리고 노인에 대한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죽기(竹器) 대쪽이 떨어지면 쪽을 대고 물수건으로 겉을 씻고 뜨거운 인두로 다리면 다시 붙어서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죽기는 대쪽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죽기에 대를 붙일 때, 좋은 부레를 녹여서 흠뻑 칠한 뒤에 볕에 쪼여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뒤에 비로소 붙인다. 이것을 소라 붙인다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접착제를 써서 직접 붙인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소라붙일 사람이 있을 같지 않다.

 


약재(藥材)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숙지황(熟地黃)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윗질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구증구포(九蒸九曝) 것은 이상 비싸다,
구증구포란 아홉 쪄내고 말린 것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다섯 번을 쪘는지 번을 쪘는지 수가 없었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아홉 번씩 이도 없고, 그것을 믿고 배씩 값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 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방망이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노인을 찾아가서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동대문의 지붕 추녀를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노인이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방망이를 깎다가 유연히 추녀 끝에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도연명(陶淵明) 시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북어 자반을 뜯고 있었다. 전에 더덕, 북어를 방망이로 쿵쿵 두들겨서 먹던 생각이 난다.

방망이 구경한 지도 오래다. 요새는 다듬이질하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만호도의성(萬戶擣衣聲)이니 위군추야도의성(爲君秋夜擣衣聲)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소리도 사라진 이미 오래다.

문득 40 방망이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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